전가교리 2019. 10. 7. 13:01

존 페스코가 말하는 전가교리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역자 서문)


전가 교리는 인간의 실존을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전가 개념이 없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전가는 인간이 처한 죄악의 근원적 상황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전가 개념은 신자인건 불신자이건 간에, 모든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설명해주는 실존적 개념이다.


인간의 악은 전가 개념이 없이 설명 될 수 없으며, 인간의 구원은 전가의 개념이 없이 불가능하다.


전가 교리는 신앙고백에 담겨있어야 할 가장 핵심되는 교리이며, 전가 개념이 없는 신앙고백은 모양만 있을 뿐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이다.


전가 개념이 없는 신앙고백은 구원의 효력이 없는 자기 도취적인 고백일 뿐이다.


전가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해준다.


전가 교리의 중요성에 비해서, 불행하게도 많은 신앙인들이 전가라는 용어에 대하여 매우 낯설어하며, 새관점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현대 신학자들조차 전가 교리를 외면하거나 부정한다.


전가 교리를 부정하는 톰 라이트는 전가라는 용어가 성경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지만, 이러한 논리는 칭의나 삼위일체 개념도 성경에서 사용되고있지 않는 용어이기에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사람들이 톰 라이트의 수 많은 책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전가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이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도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그 자리를 사람이 자신의 의를 채워넣어야하는 인간적인 논리일 뿐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의 첫번째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이다.


이는 인간에게 구원을 이룰 만한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가 교리를 부정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부패한 무능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들이다.


신앙고백은 자신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인정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것은 오직 흠이없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야만 가능하다.


전가교리가 없는 신앙고백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통로가 될 수가 없다.


이번 글에서는 존 페스코가 정리한 전가에 대한 짧막한 글에 대하여 번역을 해 보고자 한다.


출처https://www.wscal.edu/blog/imputation



전가

Imputation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매우 개인주의적인 이 세대에, 우리가 다른 이들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In the highly individualistic age in which we live, few embrace the idea that we can be held accountable for the actions of others.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주고있다.

But the Bible paints a very different picture.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신다고 가르친다.

The Bible teaches us that God holds us accountable for our own sins.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분명하다(마 12:36-37).

Christ’s words about this are very clear (Matt. 12:36-37). 


그러나 우리도 역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에 연결되어있다.

But we are also connected to the people and world around us. 


사람들은 자신들의 매일의 삶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내적으로 연결된 인간 관계를 인식한다.

People unconsciously recognize this intra-human bond in their day-to-day lives. 


우리는 고립된 비누방울에 살지 않는다- 한 사람의 행동은 종종 전체 공동체로 퍼져나간다.

We do not live in isolated bubbles—the actions of one person often ripple throughout an entire community. 


성경은 이러한 관계를 인식하면서 모든 사람이 두 인물, 즉 아담 혹은 그리스도 가운데 하나와 연결되어있음을 설명한다.

The Bible recognizes this relationship and explains the connection that all people have to one of two figures, either Adam or Christ.


사도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각자의 대표적인 행동의 영향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한다:"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The apostle Paul spells out the implications of the respective representative actions of Adam and Christ: “For as the one man’s disobedience the many were constituted sinners, so by the one man’s obedience the many will be constituted righteous” (Rom. 5:19, trans. mine). 


아담의 하나의 죄는 대표적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의 악행을 모든 인류에게 전가, 혹은 모든 인류의 악행으로 여기셨다.

Adam’s one sin was a representative action—God imputed, or credited, his one sinful deed to all humanity. 


역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순종을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전가시키신다:"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Conversely, God imputes Christ’s representative obedience to all those who believe in him: “Therefore, as one trespass led to condemnation for all men, so one act of righteousness leads to justification and life for all men” (Rom. 5:18). 


이러한 진술들이 전가교리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다.

These statements constitute the heart of the doctrine of imputation.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행함들뿐만이 아니라, 아담과 그리스도의 행함 대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God holds us accountable, therefore, both for our own personal actions, and for the actions of either Adam or Christ. 


성경은 다음의 세가지 핵심적 전가를 설명한다: 아담에서 모든 인류에게로, 택함받은 자의 죄를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택함받은 자에게.

The Bible sets forth three key imputations: Adam to all humanity, the sins of the elect to Christ, and the righteousness of Christ to the elect. 


구약과 신약에는 이러한 세가지 전가들을 설명해주는 다수의 성경 구절들이 있다.

There are a number of biblical texts in the Old and New Testament that address these three imputations.


앞에서 기록한 바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를 모든 인류에게 전가시키셨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As noted above, God imputes Adam’s sin to all human beings: “Therefore, just as sin came into the world through one man, and death through sin, and so death spread to all men because all sinned” (Rom. 5:12). 


우리가 세상을 잠깐만 보게된다면, 우리는 이 말이 진리임을 맨눈으로 보게될 것이다.

If we look at the world for a moment, we see the truth of this statement with the naked eye. 


나라, 연령, 사회, 경제력에서 관계없이 모든 이들은 죽음에 종속된다.

People from nation, age, social, and economic class are subject to death. 


예를 들면, 왜 개인적으로 의도적으로 죄를 지어보지도 않은 이들도 죽음에 종속되어야만 하는가?

Why, for example, are subject to death if they have never personally committed a conscious sin? 


간단히 말하자면, 이들도 아담의 대표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종속되는 것이다.

Quite simply, they are subject to death because of Adam’s representative action.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범죄인) 실제적 죄와 (아담의 처음 불순종인) 원죄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In theological terms, God holds us accountable for actual sin (our own personal transgressions) and original sin (Adam’s first disobedience).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의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을 택하신 자에게 전가시키신다.

God imputes the sins of the elect to Christ and Christ’s righteousness or obedience to the elect. 


바울은 이러한 진리를 비법률적 용어로 다음과같이 표현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Paul reveals this truth in non-legal terminology when he writes: “For our sake he made him to be sin who knew no sin,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2 Cor. 5:21). 


바울은 우리가 로마서 5장 19절에서 볼 수 있는 법률적 용어를,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죄인이나 의인으로 "지명"하시거나 "규정"하셨다는 법률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Paul does not use the legal terminology that we find in Romans 5:19, that is, God “appoints,” or, “constitutes” (kathestemi) people as sinners or as righteous.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셨다고 설명한다.

Here Paul explains that God made Christ sin.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죄를 생성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This does not mean that he created sin in Christ; rather, Christ bore it on our behalf.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심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가 있었다.

Conversely, God made Christ sin so that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후 5:17-18)

Paul writes,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new creation. The old has passed away; behold, the new has come. All this is from God, who through Christ reconciled us to himself” (2 Cot. 5:17-18, emphasis, trans. mine). 


오직 믿음이 의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우리에게 전가해주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되는 것이다.

We receive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the ministry of Christ when God imputes his perfect obedience to us by faith alone.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에 의한 같은 방식으로 옮기신 것이다.

The same manner by which God makes Christ sin is the same way he conveys Christ’s righteousness—by imputation.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대한 바울의 근거 본문은, 구약의 속죄의 날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 예언인 이사야 53장이다.

Paul’s subtext to 2 Corinthians 5:21 is Isaiah 53, a prophecy that has its roots in the Old Testament Day of Atonement. 


이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중요하다.

This is significant for at least two reasons. 


한 가지는 이사야서가 전가를 다루는 본문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11-12절)

One, Isaiah is a text that deals with imputation: “By his knowledge shall the righteous one, my servant, make many to be accounted righteous, and he shall bear their iniquities . . . because he poured out his soul to death and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v. 11-12). 


두번째는, 선지자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속죄의 날에 관한 언어이다. 

Two, when the prophet states that Christ would “bear their iniquities,” this is language from the Day of Atonement. 


대제사장은 속죄 염소에 자신의 손을 얹혀야만 했으며, 이 염소는 죄를 담당하고서 이를 없애야만 했었다.(레 16:22)

The high priest was supposed to lay his hands on the scape goat and the goat was supposed to “bear” the sins and take them away (Lev. 16:22). 


속죄의 날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환상과의 커다란 차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동물이 아닌 자신의 유일한 독생자에게 전가시키셨다는 것이다.

The big difference between the Day of Atonement and Isaiah’s prophet vision of Christ’s crucifixion is that God did not impute our sins to an animal but to his only begotten Son.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의 바울의 진술은 구약에 깊은 근원적 뿌리가 있다.

Paul’s statements in 2 Corinthians 5:21, therefore, have deep taproots into the Old Testament.


전가는, 악을 징벌하는데 있어서 약속을 실행하여야 할 것을 분명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신적인 장부에 계산해서 넣어야할 구원에 관한 냉정한 계산에 관한 것이 아니며,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Imputation is not about a cold calculus of salvation where God moves numbers around in his divine ledger to ensure that he gets his pound of flesh in the punishment of the wicked—far from it. 


하나님의 아들은 머나먼 나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형벌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이로서 우리를 그의 흠없는 의의 옷으로 입히셨다.

The Son of God entered the far country, suffered the penalty of the law on our behalf, and clothed us with his spotless robe of righteousness. 


우리의 맏형의 희생적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는 더 이상 탕자가 아니다.

Because of the sacrificial love of our elder brother, we are prodigals no more. 


우리는 속임수를 써서 하나님의 호의에 들어가려고해서는 안되며, 그보다는 우리의 맏형의 의의 옷을 입고서 하나님의 현존에 담대히 들어감으로서, 우리의 천상의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야한다(슥 3:1)

We do not have to try to swindle our way into God’s favor but rather enter boldly in his presence wearing our elder brother’s coat of righteousness so that we receive the blessing of our heavenly Father (cf. Zech. 3:1ff).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움을 받아야만 하고, 또 우리가 그러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란 말인가(요1서 3:1)?

What wonderful manner of love is thi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so we are (1 John 3:1).


존 페스코의 "Death in Adam, Life in Christ:전가교리"는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있다.

Dr. Fesko’s book, Death in Adam, Life in Christ: The Doctrine of Imputation, treats this subject in much greater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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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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