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2018. 1. 3. 23:32

하나님이신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뜻에 복종할 수 있는가?


김원호(dent4834@hanmail.net)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삼위 하나님의 창세전 구속 언약을 근거로 하고있다.


구속 언약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전제로한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성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실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보에티우스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하시면서도 종으로서의 아들의 상태를, 하나님의 형태로서의 아들과 종의 형태로서의 아들의 이중적으로 표현으로 구분하는 어거스틴의 도움을 받는다


이에 대하여 존 페스코J. V. Fesko는 “삼위 하나님과 구속 언약The Trinity and the Covenant of Redemption”의 일부(p6)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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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완전한 하나님who was fully God이신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면서 순종submit to and obey His Father’s will할 수 있는가?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와 같은 17세기 신학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면서 고대로부터from antiquity 답을 찾았었다.


보에티우스는 그리스도의 공로에 관한 자신의 논술disputation on Christ’s merit에서 아들의 복종의 속성nature of the Son’s submission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의 도움을 받는다.


보에티우스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크리소스톰Chrysostom (ca. 349-407)의 의견들을 거부한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에 의하면,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암시들도 단순히 자신의 아버지에게 동의한다는 것이지 복종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에 보에티우스는 어거스틴의 통찰력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 14:28)는 그리스도의 언급에 대한 그의 견해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어거스틴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론적 평등ontological equality of Father and Son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종으로서의 아들의 상태the Son’s status as a servant도 강조하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있어서 빌립보서 2장 8~9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형태로서의 아들과 종의 형태로서의 아들의 이중적으로 표현을 사용하고있음에 근거를 두고있다.


비록 어거스틴은 이러한 의미들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들의 인격과 사역에서the Son’s person and work의 존재론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ontological and economic aspects을 구분하였었다.



보에티우스는 이러한 통찰력을 끌어내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중재자와 보증mediator and surety으로서 율법에 복종하셨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언약 안에서 세워진 역할을 하셨는지를 설명하였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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